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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극과 극 1988 서울 vs 2018 평창

[취재파일] 극과 극 1988 서울 vs 2018 평창
지구촌 대축제인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이제 3년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1988 서울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즉 정확히 한 세대 만에 한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입니다. 30년은 엄청나게 긴 세월입니다. 따라서 모든 면에서 서울올림픽 때보다 훨씬 발전된 모습을 세계에 보여줘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3수 끝에 어렵게 유치했지만 각 기관의 주도권 다툼에다 온갖 잡음과 혼선, 무능으로 허송세월의 잘못을 범했습니다. 이제는 역사에 남을 완벽한 대회는커녕 ‘B급 올림픽’이라도 어떻게든 치르기만 하면 다행이라는 인식이 들 정도가 됐습니다. 평창올림픽 준비가 차질을 빚는 근본적인 이유를 해외 언론이 ‘유례없이 성공한’(Unprecedented success)대회로 평가하는 서울올림픽 때와 비교해 살펴보겠습니다.

① 대통령의 관심 차이: 열탕 vs 온탕?

대한민국은 대통령 중심제 국가입니다. ‘제왕적 권력’을 행사하는 대통령이 올림픽에 얼마나 큰 관심을 갖느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됩니다. 육군사관학교 시절 축구 골키퍼를 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은 ‘스포츠 대통령’으로 불릴 만큼 스포츠와 스포츠인에 대한 사랑이 대단했습니다. 1988 서울올림픽 유치 성공과 준비에도 최고 수장 역할을 했습니다. 체육계 인사들은 “그의 말 한마디가 바로 법이었다”며 “강력한 리더십과 카리스마로 온갖 난제를 앞장서 해결했다”고 회고합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에 비해 박근혜 현 대통령의 위력은 현격히 떨어진다는 게 중론입니다. 한마디로 영(令)이 제대로 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올림픽에 대한 애정과 관심도 전두환 전 대통령이 열탕 수준이었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기껏해야 온탕이라는 게 지배적인 의견입니다. 지난해 10월말 평창을 방문했을 때 조양호 조직위원장이 조직위 인사 문제 개선을 건의했지만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라고 합니다.

② 조직위의 사기 차이: 출세의 길 vs 좌천의 길       

대통령이 올림픽 준비의 ‘머리’라면 조직위원회는 팔, 다리에 비유됩니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조직위는 각계에서 파견된 인사로 구성돼 있습니다. 서로 잘 협조하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지만 반대가 되면 ‘한지붕 세가족’을 면할 수 없습니다. 서울올림픽조직위에는 각 부처에서 엘리트 직원이 파견됐습니다. 인사 고과도 최상급이었습니다. 당연히 직원들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고 사명감이 넘쳐흘렀습니다. 서울올림픽조직위 파견은 ‘출세의 길’로 인식됐습니다. 이곳에서 일했던 ‘총무처 3총사’ 가운데 김범일씨는 나중에 대구시장이 됐고 김종민씨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올랐습니다.

반면 현재 평창조직위는 ‘좌천의 길’로 평가됩니다. 대부분 조직위에 파견되기를 싫어합니다. 파견되면 빨리 원래 소속기관으로 돌아갈 날만 꼽고 있습니다. 조직위에 파견된 직원들의 인사고과가 대부분 하위등급이었기 때문입니다. 몇몇 간부가 원대 복귀를 신청했는데 복귀에 성공한 사람은 ‘희희낙락’인 반면 복귀에 실패한 사람은 앞날이 캄캄한 듯 낙담한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낙하산 인사’ 논란에 휘말린 사람이 핵심요직에 오랫동안 배치돼 국내외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평창조직위가 제대로 돌아갈리 만무했습니다. 

③ 지휘체계의 차이: 일사불란 vs 중구난방

서울올림픽 때는 정부-서울시-조직위를 비롯해 관계 부처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습니다. 평창은 정반대입니다. 정부와 야당 도지사가 이끄는 강원도가 처음부터 끝까지 사사건건 맞서며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습니다. 정부와 최문순 강원지사가 태생적으로 갈등을 빚는 가운데 조직위는 이렇다 할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강원도 안에서도 각 지역별로 의견이 달라 배가 산으로 갈 지경이 됐습니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 때처럼 지방자치제의 폐해가 올림픽 준비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④ 개최지의 힘 차이: 서울 vs 강원도

서울올림픽은 수도 서울에서 열렸습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강원도에서 개최됩니다. 서울과 강원도는 경제력, 재정자립도, 인구수를 비롯해 정치, 사회, 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미치는 영향력이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강원도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핸디캡입니다. 강원도가 평창 올림픽을 위해 내는 금액은 평창올림픽 전체 예산의 10%도 되지 않지만 강원도의 열악한 재정상황을 감안하면 이것도 만만치 않은 부담입니다. 원천적인 힘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강원도인 스스로가 평창 동계올림픽이 ‘강원도만의 행사’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자세를 낮추고 각계의 협조를 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⑤ 국민 인식의 차이: 국가 행사 vs 지방 행사

서울올림픽은 분명 서울에서 열렸지만 국민들은 그것을 ‘대한민국 행사’ 즉 ‘National event'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해서는 대부분 ‘지방 행사’ 즉 'Local event'로 여기고 있습니다. 올림픽에 대한 관심도와 협조 정신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평창이 이런 약점을 뛰어넘으면 참신한 홍보 프로그램과 다양한 이벤트를 개발해 올림픽 붐 조성과 함께 국민의 관심을 유발해야 합니다.          

⑥ 경제 여건의 차이: 3저 호황 vs 장기 침체

서울올림픽 직전 3년인 1986~1988년 사이에 석유 가격, 달러 가치, 국제 금리가 낮게 유지되면서 한국경제는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누립니다. 이른바 ‘3저 호황’입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2008년 세계를 덮친 금융 위기 이후 한국경제는 뾰족한 활로를 찾지 못한채 장기 침체의 늪에 빠져 있습니다. 현재 평창 동계올림픽의 스폰서 유치가 당초 목표액의  30%밖에 되지 않고 조직위가 늘 돈이 없어 허덕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⑦ IOC의 협조 차이: 사마란치의 애정 vs 바흐의 반감

서울올림픽을 유치할 때 그리고 개최할 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사마란치였습니다. 사마란치는 대표적 ‘친한파’ 인사로 서울올림픽 성공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습니다. 북한과 소련이 한국의 정치 불안을 이유로 개최지를 옮기자고 주장했을 때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한 것도 사마란치였습니다. 현 IOC위원장인 토마스 바흐는 평창에 대해 그런 애정을 갖고 있기는커녕 오히려 반감을 갖고 있습니다. 자신의 조국 독일 뮌헨이 평창에 2018 동계올림픽 개최권을 빼앗긴 것을 비롯해 여러 이유로 평창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이 생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위에 제가 거론한 7가지 비교 가운데 강원도와 평창조직위가 어찌할 수 없는 이른바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반면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이유가 어찌됐든 해외 분산 개최가 사실상 무산된 마당에 이제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패는 오로지 우리의 몫으로 남게 됐습니다. 강원도지사를 세 번이나 지낸 김진선 전 조직위원장은 “서울올림픽이 ‘한강의 기적’을 이룬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여줬다면 평창올림픽은 ‘선진 코리아’의 위상을 세계에 확인시키는 무대가 돼야 한다”고 역설한 적이 있습니다. 백번 지당한 말입니다. 강원도 평창이 한국 역사는 물론 올림픽 역사에 부끄러운 한 페이지를 남기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당장 ‘환골탈태’와 ‘분골쇄신’을 가슴에 새기고 실천하는 것밖에 달리 길이 없어 보입니다. 만약 이것마저도 하지 않겠다면 차라리 올림픽을 조기에 반납하는 것이 나을 듯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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