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종교를 초월해 마음의 쉼을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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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8-11-01 08:40 조회1,990회 댓글0건본문
ㆍ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 오대산 자연명상마을 열어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의 또 다른 시도가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스님은 지난 7월 말 월정사 인근에 오대산 자연명상마을(OMV)을 열었다. 종교를 초월해 누구나 와서 자신만의 쉼과 수행을 할 수 있는 ‘힐링 플랫폼’이다.
오대산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은 불교계를 대표하는 트렌드세터다. 종교는 세상과 유리될 수 없고, 그래서 세상에 기여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스님은 일찍이 산문(山門)을 열고 세상과 호흡했다. 2000년대 초반 월정사에 개설한 단기출가학교는 웰빙, 힐링 열풍과 맞물리면서 대중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머리를 깎고 한 달 동안 출가 체험을 하는 이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실제 출가자도 증가했다. 산사영화제, 오대산 불교문화축전, 천년의 숲 걷기 대회 등 이웃들의 삶에 다가간 프로그램도 호응을 얻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됐던 조선왕조실록과 의궤를 되찾아온 공로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기도 한 스님은 현재 경실련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스님의 또 다른 시도가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스님은 지난 7월 말 월정사 인근에 오대산 자연명상마을(OMV)을 열었다. 2만5000평 부지 위에 목조로 지어진 숙박시설과 선원이 들어서 있으며 자연과 어우러지는 산책로 숲길이 나 있다. 월정사가 운영주체이지만 불교에 기반한 것이 아닌, 종교를 초월해 누구나 와서 자신만의 쉼과 수행을 할 수 있는 ‘힐링 플랫폼’이다. 지난 10월 16일, 월정사에서 정념 스님을 만났다. 스님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쉼을 주고 싶었다”면서 “산중 사찰이 가진 자산을 공동체로 회향하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계획했다고 들었습니다.
“사찰이 산중에만 머무르면서 세상과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했습니다. 이곳에 주지로 부임하면서 단기출가학교 프로그램을 하게 된 것도 산중 불교문화를 확산시키고 싶었기 때문이고요. 단기출가학교든 자연명상마을이든 그 바탕에는 쉼과 치유라는 화두가 있습니다. 현대인들이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잖아요. 물질중심주의, 과도한 경쟁에 지쳐 정체성을 상실할 뿐 아니라 각종 정신적 병리현상을 겪고 있어요.
그래서 이런 마음의 문제를 치유하고 쉼을 줄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오대산의 숲, 자연이라는 이 귀한 자산이야말로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겠다 싶었지요. 단기출가학교도 좋은 역할을 해 왔지만 이 프로그램은 종교적 공간, 즉 사찰 안에서 이뤄졌지요. 그런데 자연명상마을은 독립적으로 조성해 종교를 초월해 누구나 편하게 올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탈종교에 중점을 두었다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마음을 치유하는 것은 개별 종교를 넘어선 인간의 문제입니다. 그러니 마음의 쉼을 얻고 싶은 사람들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사찰과 좀 떨어진 곳에 만든 것도 혹시 느낄지 모를 거리낌을 없애기 위해서입니다. 이곳엔 강제성도 없고 의무도 없어요. 명상하면 불교적 의례나 수행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아 그런 부담조차 갖지 말라는 차원에서 ‘쉬며 먹고 즐기고 느끼면서 함께하는 생활 속 자연 명상’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습니다. 누구나 와서 자기 방식의 쉼을 찾고 도모할 수 있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지요. 일전에 가톨릭 신부님들도 이곳에 와서 피정을 하면 좋겠다고, 일정을 잡아봐야겠다고 하시더군요. 천주교든 개신교든 어떤 종교를 믿더라도 자유롭게 찾아오시면 좋겠습니다.”
자연명상마을 정원에서 식당으로 이어지는 길.
-‘명상’이라고 하면 누구나 아는 것 같지만 또 막연한 개념 같기도 합니다. 명상을 뭐라고 정의해야 할까요.
“자신의 내면에 집중해 통찰하는 것입니다. 내면을 응시해서 생각이 일어나는 근원의 자리를 바르게 살피게 하지요. 항상 깨어서 바르게 생각하고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명상입니다. 집중해서 통찰하면 만 가지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결국은 하나의 고요한 마음자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고요한 자리를 응시해서 외부의 대상과 내부의 마음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는 더 나아가서 깨달음과 연결되지요.”
-그렇다면 명상과 참선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궁극적으로는 정신적인 평화와 자유를 얻고 행복해지는 데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다름이 없지요. 방법론의 차이일 뿐인데 참선 역시 큰 의미에서 명상에 포함되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
참선은 대승불교에서 주로 사용하는 개념이지요. 이것이 일본 스즈키 박사를 통해 ‘젠’이라는 이름으로 서구에 전달됐습니다. 이는 ‘돈오’, 즉 순간의 깨달음이라는 관점이지요. 본디 모든 사람이 부처임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명상은 남방불교의 수행방법이라고 보면 되는데 단계적 수행을 통해 깨달음의 과정에 이르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명상은 불교의 문화를 바탕으로 한 건데 오히려 서양에서 훨씬 발달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서양은 동양의 불교문화를 받아들여 명상을 하나의 문화로 발전시켰습니다. 위빠사나, 참선과 같은 수행법을 받아들인 상태에서 뇌과학적 검증과 연구를 거듭해 체계적으로 정리했지요. 그래서 종교의 개념이 아니라 정신건강이나 생활철학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생활 속에 훨씬 폭넓고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 것 같아요. 게다가 불교는 과학이 발달할수록 모순이 드러나는 유일신 종교와 달리 과학적이고 합리적입니다. 그래서 불교에 기반한 명상이 서양에선 사상적으로, 학문적으로도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봅니다.”
자연명상마을에 자리잡은 동림선원.
-플랫폼으로 운영한다고 했는데 이곳만의 특징적인 프로그램은 없습니까. 또 세계적인 명상센터와 차별화되는 점은 무엇인가요.
“유명한 명상센터를 보면 지도자의 수행법을 따르고 있습니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틱낫한 스님의 플럼 빌리지는 호흡과 걷기를 중시하지요. 들숨날숨의 호흡을 통한 명상은 부처님이 수행하셨던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런 센터에는 엄격한 수행 프로그램과 규율이 있겠지만 이곳은 자율성·다양성을 특징으로 삼고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참선이나 명상의 방법론적인 부분을 지도하지만 자신의 명상 프로그램이 있다면 이곳에서 얼마든지 나눌 수 있습니다. 그외에 인문학적 프로그램도 개발할 계획입니다.” (자연명상마을 안에는 조정래 문학관이 들어선다. 내년 6월 개관할 예정이다.)
-명상마을 내에 있는 선원 이름이 ‘동림선원(東林禪院)’입니다. 무슨 뜻인가요.
“중국 여산에 가면 동림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주석하던 혜원 선사는 종교를 가리지 않고 지성인들과 진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동림사 앞에는 호계라는 조그마한 강이 있었는데 혜원 선사가 정한 원칙은 안거 결제 전에 손님을 배웅할 때 이 강을 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도교의 육수정 도사, 유교의 도연명 시인과 담소를 나누며 배웅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이 강을 넘었어요. 그래서 이 사실을 깨닫고 세 분이 동시에 크게 웃었다고 합니다. ‘호계삼소(虎溪三笑)’라는 고사가 여기서 유래한 거지요. 즉, 유불선이라는 각각의 종교를 초월해 진리를 탐구하고 화합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장이 되라는 뜻에서 동림선원이라고 지었습니다. 실제로 ‘삼소회(三笑會)’라는 모임도 있지요. 비구니 스님과 천주교 수녀님, 원불교 정녀님 등 3개 종교의 여성 성직자들이 모여 종교 간의 벽을 넘는 의미있는 시도를 하고 계십니다.”
-정신건강 문제를 강조하셨는데 요즘 우리 사회가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모습이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소위 ‘분노 사회’라고 하지 않습니까.
“너무나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들,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요. 분노는 탐욕, 어리석음과 함께 극복해야 할 3독으로 불교에서는 보고 있습니다. 분노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누구에게나 있고, 우리 사회에는 분노를 유발시키는 요인도 많습니다. 하지만 분노를 통제하지 못하는 것은 폭력으로 이어질 뿐 아니라 너무나 많은 상처와 후유증을 남깁니다. 분노에 따른 폭력은 정당화해서는 안 됩니다.”
자연명상마을 내 숙소. / 박경은 기자
-분노를 조절하는 것이 누구나 겪는 어려움 아닐까요.
“분노는 급류와 같은 감정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객관화해서 바라보는 것, 즉 분노와 나를 분리시키는 것이 필요하지요. 분노가 오르는 순간에 내 속의 분노를 지켜보는 것입니다. 30초 정도라도 잠시 나를 관찰하고 들여다보라는 것입니다. 호흡을 통한 명상은 그런 점에서 효과가 좋습니다. 들숨과 날숨을 평소보다 길게 반복하며 내 속에서 분노를 내보내면 마음이 진정됩니다. 이뿐 아니라 불교의 다양한 수행법은 분노를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종교의 긍정적인 역할들이 있지만 최근에는 종교인구가 줄어드는 등 탈종교 시대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선진사회일수록 무종교인이 더 많아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고 뚜렷한 사실입니다. 한국 사회도 점점 그렇게 되어가고 있고요. 우리 사회에서 종교의 모습을 보면 과거 농경사회에서 형성되었던 형태와 문화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학자 유발 하라리의 주장을 보면 기존의 종교가 추구하고 천착해 왔던 문제들은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과학기술혁명이 대체해 해결할 것이라고 하지요. 그런 관점에 대해 저는 일정 부분 동의를 합니다. 시대적 요구에 따라 종교도 변해야 하는데 그런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그 종교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 종교의 역할은 어떠해야 할까요.
“정신적 문제와 경제적 양극화 등 현대사회가 주는 삶의 고통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종교의 역할은 더 중요합니다. 종교는 결코 세상과 이웃과 유리되어선 안 됩니다. 중생들의 고통을 보듬고 덜어주는 것,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이 되도록 구현하는 것. 그것이 이 시대 종교인들이 해야 할 역할입니다. 우리의 이웃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덜어주고 그것을 극복하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종교가 세상에 기여하는 방법입니다.
사회를 위해 종교가 존재하는 것이지, 종교를 위해 사회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종교인은 편협한 울타리 안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각자 자신의 마음을 맑고 청결하고 올바르게 닦은 종교적 영성을 사회적 영성으로 확장시켜야 합니다.”
정념 스님(가운데)이 월정사를 둘러싼 전나무 숲길을 따라 포행하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그 중에서도 특히 불교의 가치, 역할은 어떠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존재에 대한 명료한 자각을 통해 깨닫고 열반에 이르는 것이 불교에서 추구하는 가장 큰 목표이고 이웃 종교와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이는 변하지 않을 불교적 진리이고 가치입니다. 그 기반에는 인간의 본성과 마음이 있습니다. 때문에 인간이 소외될 위험이 있는 인공지능,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불교는 인간의 본성을 회복시키고 그 가치를 살리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하지만 올해는 우리 불교계가 사회를 많이 실망시켰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저 역시 종단 구성원으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불교계가 세상의 변화에 발맞춰 함께 변화해오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자정의 기능을 잃고 많이 부족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민주화 운동, 통일 문제 등 우리 역사의 큰 변화와 발전 속에서 감당했어야 할 여러 가지 부분에서도 주도적 역할이 부족했지요. 앞으로 불교계가 변화하고 새 동력을 찾아 세상을 위해 더 큰 역할을 담당할 기회를 찾도록 힘쓰겠습니다.”
<글·박경은 기자 king@kyunghyang.com 사진·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원문보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6&artid=201810291526511&pt=nv#csidx64639ebcb8ca2a081505c1a217c44f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