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불교] “불교가 인류에게 던진 화두… 행복, 나눔, 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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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9-08-25 16:01 조회1,313회 댓글0건본문
계절별 묶은 41통 편지글 소개
대화, 경청, 평화와 화합 강조
불교가 지향할 그랜드 디자인
‘오대산 스님’이 보낸 41통의 편지
1980년 오대산서 처음 삭발 한 이래 이제 꼭 만 40년. 아직도 오대산을 떠나지 않는 스님이 있다. 바로 정념 스님이다. 찾아오는 이 많고 오라는 데 많은 큰 절 월정사 주지 소임만 15년째다. 하지만 아직도 동안거와 하안거 기간에는 산문(山門) 밖 출입을 삼가고 수좌들과 함께 선방에 엉덩이를 붙이고 참선에 몰두한다.
이 책에는 오대산서 40년을 보낸 정념 스님이 우리에게 주는 마흔한 통의 편지가 실려 있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정념 스님이 각종 법회와 강연 그리고 성지순례 기간 중에 들려주었던 법문을 다시 편지글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보통 스님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그리고 책으로 엮인 내용은 ‘행복’ ‘비움’ ‘나눔’이라는 큰 틀서 벗어나지 않는다. 2,500년 동안 불교가 인류에게 끊임없이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특히나 요즘 출간되는 책들은 그 형식을 위로나 위안으로 잡고 있고 그 방법으로 마음을 다스리거나 관점을 바꾸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정념 스님이 보낸 이 서간문들은 이와는 결이 좀 다르다. 이 책 역시 바탕에는 ‘행복’ ‘나눔’ ‘비움’이라는 세가지 주제들을 내포한다. 하지만 위로나 위안보다는 ‘시대정신’을, 그 방법으로 관점을 바꾸라는 조언보다는 ‘더불어 실천할 것’을 강조한다.
특히 스님이 편지글에서 강조한 것은 세 가지다. 바로 명상, 대화와 경청 그리고 평화와 화합이다. 이 화두들은 어찌 보면 행복과 나눔 그리고 비움을 실천하는 지침들일 수 있지만 또한 21세기도 이제 2할을 넘어가는 이 시대에 종교, 그리고 불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기도 하다. 혹자는 이걸 불교의 ‘그랜드디자인’이라고도 부른다. 명상, 대화와 경청 그리고 평화와 화합은 과거에서 현재까지를 돌아보는 것뿐 아니라 현재서 미래까지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편지에 첨부된 3백여 장 사찰 일상 사진
스님이 명상, 대화와 경청 그리고 평화와 화합을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가 벌여놓은 숙명같은 공업(共業)의 더미가 때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너무 커 버렸다는 이유 때문이다. 나와 너, 남북 그리고 세계질서 속에서의 갈등은 물론 환경, 빈부 갈등 등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과제들이 당장 우리 공동체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정념 스님은 법문 속에 불교의 교리나 선사들의 선문답 그리고 고사를 인용하며 이런 내용을 아주 쉽고 명쾌하게 정리한다.
또 하나, 스님이 보낸 편지에는 흥미로운 사진들도 동봉돼 있다. 글과 함께 실린 200여 장의 컬러 사진은 절집의 하루, 그리고 절집의 365일이 빼곡하다. 기상하고, 예불하고, 공양하고, 청소하고, 참선하고, 포행하는 월정사의 24시 그리고 사계절이 한눈에 보인다. 오대산 적멸보궁을 오르는 길이나 눈 쌓인 서대 염불암, 그리고 청량한 부도밭 사진은 그 자체로도 말없는 설법이다. 당신에게 부친 마흔한 통의 편지를 하나씩 뜯어보기 바란다. 물론 답장은 필요 없다. 스스로 간직하면 되고, 세상과 나누면 된다.
불교계 히트상품 중 하나인 단기출가학교
1994년 조계종 개혁 이후 소위 불교계 그리고 조계종이 만들어낸 3대 히트상품으로 회자되는 것이 있다. 가장 멀리는 1996년 연등축제다. 이전까지 제등행렬로 불리며 단순히 등을 들고 행진하던 행사서 참여와 체험 행사로 진화를 하면서 등을 든 10만의 행렬은 물론 수많은 시민과 외국인의 각광을 받는 행사로 변모했다. 이제는 연등회로 명칭이 바뀌었고 국가무형문화재 122호로 지정됐다.
두 번째는 템플스테이다. 2002년에는 월드컵과 연계해 처음 기획 시도된 템플스테이는 누구나 산사서 휴식을 취하고 수행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연인원 50만 명, 누적인원 500만 명을 돌파해 ‘국민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거론되는 또 하나의 프로그램이 바로 2004년부터 시작된 월정사 단기출가학교다. 사찰에서 약 한 달간 출가자와 동일한 일정과 과정으로 ‘스님’이 되어 보는 것이다. 누가 한 달이나 시간을 내서 그럼 프로그램에 참여하겠냐는 우려가 있었지만 벌써 50회를 넘겼고 3천 명이 넘는 참여자를 배출했다. 더 대단한 것은 참여자 중 실제 출가자가 300명을 넘어섰다는 점이다. 10명 중 한 명은 출가의 길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출가자 감소에 종단의 걱정이 늘어나는 시대에 역발상을 통해 이룩한 프로그램이다. 특히나 연등회나 템플스테이가 범불교계나 불교계 최대 종단인 조계종의 전폭적인 지원을 통해 진행되는 행사인 반면 단기출가학교는 월정사라는 개별 사찰에서 진행된다는 점이 더욱 주목된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추진한 사람이 바로 2004년 월정사 주지로 부임해 15년 동안 오대산을 지키고 있는 정념 스님이다. 책은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로 나눠 구성돼 있다. 글과 함께 첨부한 사진들도 계절에 맞게 편집해 실어 편지에 대한 맛을 돋워준다. 계절에 맞게 펼쳐 읽으면 마음속 한구석에 따뜻한 기운이 점점 스며듬을 느낄 수 있는 감로법문들로 가득하다.
▲저자 정념 스님은?
1980년 탄허 큰스님의 전법 제자인 만화 희찬 스님을 은사로 출가, 수계했다. 조계종 종립 중앙승가대를 졸업한 뒤, 1992년 오대산 상원사 주지를 맡아서 대중교화를 시작했다. 이후 현재까지 제 4교구 본사인 오대산 월정사를 이끌면서 한국불교의 위상을 재정립중이다.
2004년 오대산 월정사 주지를 맡아 ‘단기출가학교’ ‘자연명상마을(2018)’ 그리고 각종 복지시설을 설립하는 등 선진적 시도들을 하고 있다. 참선 수행을 중시하는 스님은 한암 스님의 자취가 서린 상원사 청량선원을 복원했고, 2008년에는 월정사에 만월선원을 개원했으며, 또한 일반인들을 위한 문수선원과 동림선원을 개원해 오대산을 새로운 ‘선종산문’으로 만들었다.
중앙승가대 총동문회장, 동국대 이사, 불교 TV이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등을 역임하거나 맡아서 한국불교 발전에 힘쓰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반출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과 〈의궤〉를 환수 받아 온 공로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 받았다.
책 속의 밑줄 긋기
▲세상을 떠나 어찌 불교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 쓰임새가 없었다면 불교는 2500여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불교는 파도처럼 요동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먹구름처럼 어둡고 탁한 마음을 맑히는 데 가장 유용한 가르침입니다. 마음의 병은 자기와 세상을 명료하게 보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불교는 자기의 세상을 바로 보는 데 가장 지름길이 되는 가르침입니다.<프롤로그 中에서>
▲월정사 현판에는 ‘설청구민(說廳俱泯)’이란 어귀가 있습니다. 귀를 활짝 열고 너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면 너의 생각은 곧 나의 생각입니다. 나의 생각이 곧 너의 생각이면 나와 너라는 구분마저도 필요가 없어집니다. 나와 너의 경계가 허물어진 자리, 그 자리가 바로 깨끗한 마음입니다. 깨끗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살아가는 세상, 그곳이 바로 아름답고 평화로운 정토이고 천상세계입니다.
▲이 세상에 영원한 진리라고 인정할 만한 것은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뿐이라는 역설이 있습니다.
변화를 받아들이려면 넓은 안목이 필요합니다. 넓은 안목이란 곧 공간적이고 시간적으로 시야를 확대하는 것입니다. ‘나’만 보지 말고 그 ‘나’를 지탱하고 있는 주변의 ‘너’까지 두루 살피고, ‘현재’만 보지 말고 이 현재를 만든 ‘과거’와 이 현재가 만들어가는 ‘미래’로 시야를 확대하는 것, 그것이 바로 넓은 안목입니다.
▲이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나’와 ‘나의 것’들은 몽땅 ‘너’와 ‘너의 것’에서 흘러온 것이 됩니다.
이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지금의 ‘나’와 ‘나의 것’들은 몽땅 ‘너’와 ‘너의 것’으로 흘러갈 것입니다.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면 이는 너무도 자명한 사실입니다.
▲이런 변화의 흐름을 인정하는 사람은 놓아야 할 순간이 찾아왔을 때 감사함을 표합니다. 돈도, 권력도, 명예도 몽땅 세상에서 빌려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내 것이라며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는 집착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흥망성쇠의 물결 따라 출렁이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변화의 흐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흥망성쇠의 물결 따라 기쁨과 슬픔을 끝없이 반복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