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남을 감동시키는 일'은 사실 대단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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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9-09-24 09:24 조회1,820회 댓글0건본문
'남을 감동시키는 일'은 사실 대단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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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월정사에 가다
나는 해마다 대여섯 차례 이상 오대산 월정사에 간다. 그 까닭은 월정사 지장암 옆 수목 장에 조상 네 분을 모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어른 기일, 그리고 추석이나 설 명절 전에는 으레 찾아가기 마련이다. 그밖에도 푹 쉬고 싶을 때나 중요한 글을 집필할 때는 한 달 정도 그곳 명상관 선방에서 머물기도 한다.
명절을 앞둔 날이었다. 그날 산사에서 하룻밤을 묵고 이튿날 새벽 예불을 보고자 느지막이 집을 나섰다. 예사 때처럼 시외버스를 타고 진부시외버스터미널에 내리자 막 월정사 행 순환버스가 떠나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대합실로 가서 시간표를 보자 다음 차는 1시간 10분 지난 뒤에 있었다.
그때 두 여인이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처사님! 월정사에 가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저희도 월정사를 가는데 버스를 놓쳤습니다. 택시로 가려고 하는데 같이 합승하시겠습니까?"
나도 마침 낭패한 뒤끝인 데다가 다음 차로 가면 저녁 공양시간에 늦기에 그 제의가 무척 반가웠다.
"그럽시다."
우리 세 사람은 즉석에서 뜻이 맞아 거기서 조금 떨어진 진부 택시정류장으로 갔다. 두 여인은 택시 기사에게 월정사까지 어느 정도의 요금이 나오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기사는 1만 8천원 정도 나올 거라고 대답했다. 두 여인은 각자 지갑에서 돈을 꺼낸 뒤 나에게 자기들 몫이라면서 1만 2천원을 건넸다. 나는 그 가운데 1만원권 한 장만 집었다.
"다 받으세요. 셈은 셈이니까요."
"그만 됐습니다."
나는 굳이 나머지 돈은 사양했다. 나는 택시 앞자리에 앉았고 두 여인은 뒷자리에 앉았다. 곧 택시는 쏜살처럼 달리더니 10여 분 뒤 월정사주차장에 우리 세 사람을 내려 주었다. 거기서 택시비를 지불한 뒤 네 사람 모두 덕담 후 헤어졌다.
나는 예사 때처럼 곧장 월정사 원주실로 간 뒤 원주보살님으로부터 그날 밤 묵을 방을 배정받았다. 내 방에다 여장을 풀고 먼저 공양 간으로 갔다.
성불하십시오
거기서 저녁공양을 거지반 마칠 무렵이었다. 그때 조금 전에 같이 택시를 타고 온 두 여인이 공양 간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내 자리로 다가 와서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면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
나도 두 손을 모아 답례를 하고 마침 식사를 마쳤기에 곧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찰나 한 여인이 잽싸게 밥상 위의 공양 그릇과 수저를 들고는 그릇 닦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는 그 그릇을 깨끗이 닦은 뒤 제자리에 놓고서는 나를 향해 또 합장 배례했다.
"처사님! 성불하십시오."
나는 그날 밤 늦도록 선방에서 오랫동안 정성껏 쓴 작품을 기분 좋게 퇴고했다. 이튿날 아침 공양 때도 전날 저녁과 똑같이 두 여인에게 아침 인사를 받았다. 내 공양이 끝나자 또 다른 여인은 내 공양 그릇을 잽싸게 낚아채 갔다.
그날 오후 느지막이 월정사를 떠나왔다. 이번 산사 가는 길은 다른 어느 때보다 기분이 좋았고, 산사에서 묵는 동안 글 마무리도 잘 됐다.
나는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한 진리를 깨우쳤다. 남에게 대접을 받거나 남을 감동시키는 일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조금 더 남에게 베풀거나 내 몫을 남보다 조금 더 적게 가지는 데 있다는 것을 새삼 체득했다.
진리는 멀고 고상한데 있지 않았다.
내가 남보다 조금 더 적게 갖고, 내 몫이 적으면 세상사람들은 서로 죽기살기로 싸우지 않을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세상에 내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가장 소중한 내 몸뚱이마저도 끝내 한 줌 흙으로 돌아가지 않는가.
내가 일상 생활에서 남에게 조금 더 베풀고, 남보다 조금 더 적게 가지면 세상은 한결 조용하고 밝아질 것이다. 그러면 세상의 평화는 저절로 깃들며 너와 나는 화목하게 될 것이다.
이즈음 세상이 날로 시끄러워지는 것은 내가 남보다 더 많이 가지려 하고, 내 몫을 크게 하려는 데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개도 물고가지 않는 돈 때문에 오늘도 저자거리는 소란스럽다.
▲ 월정사 적광전 | |
ⓒ 박도 |
오대산 월정사에 가다
나는 해마다 대여섯 차례 이상 오대산 월정사에 간다. 그 까닭은 월정사 지장암 옆 수목 장에 조상 네 분을 모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어른 기일, 그리고 추석이나 설 명절 전에는 으레 찾아가기 마련이다. 그밖에도 푹 쉬고 싶을 때나 중요한 글을 집필할 때는 한 달 정도 그곳 명상관 선방에서 머물기도 한다.
명절을 앞둔 날이었다. 그날 산사에서 하룻밤을 묵고 이튿날 새벽 예불을 보고자 느지막이 집을 나섰다. 예사 때처럼 시외버스를 타고 진부시외버스터미널에 내리자 막 월정사 행 순환버스가 떠나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대합실로 가서 시간표를 보자 다음 차는 1시간 10분 지난 뒤에 있었다.
"처사님! 월정사에 가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저희도 월정사를 가는데 버스를 놓쳤습니다. 택시로 가려고 하는데 같이 합승하시겠습니까?"
나도 마침 낭패한 뒤끝인 데다가 다음 차로 가면 저녁 공양시간에 늦기에 그 제의가 무척 반가웠다.
"그럽시다."
우리 세 사람은 즉석에서 뜻이 맞아 거기서 조금 떨어진 진부 택시정류장으로 갔다. 두 여인은 택시 기사에게 월정사까지 어느 정도의 요금이 나오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기사는 1만 8천원 정도 나올 거라고 대답했다. 두 여인은 각자 지갑에서 돈을 꺼낸 뒤 나에게 자기들 몫이라면서 1만 2천원을 건넸다. 나는 그 가운데 1만원권 한 장만 집었다.
"다 받으세요. 셈은 셈이니까요."
"그만 됐습니다."
나는 굳이 나머지 돈은 사양했다. 나는 택시 앞자리에 앉았고 두 여인은 뒷자리에 앉았다. 곧 택시는 쏜살처럼 달리더니 10여 분 뒤 월정사주차장에 우리 세 사람을 내려 주었다. 거기서 택시비를 지불한 뒤 네 사람 모두 덕담 후 헤어졌다.
나는 예사 때처럼 곧장 월정사 원주실로 간 뒤 원주보살님으로부터 그날 밤 묵을 방을 배정받았다. 내 방에다 여장을 풀고 먼저 공양 간으로 갔다.
▲ 월정사 어귀 일주문 | |
ⓒ 박도 |
성불하십시오
거기서 저녁공양을 거지반 마칠 무렵이었다. 그때 조금 전에 같이 택시를 타고 온 두 여인이 공양 간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내 자리로 다가 와서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면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
나도 두 손을 모아 답례를 하고 마침 식사를 마쳤기에 곧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찰나 한 여인이 잽싸게 밥상 위의 공양 그릇과 수저를 들고는 그릇 닦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는 그 그릇을 깨끗이 닦은 뒤 제자리에 놓고서는 나를 향해 또 합장 배례했다.
"처사님! 성불하십시오."
나는 그날 밤 늦도록 선방에서 오랫동안 정성껏 쓴 작품을 기분 좋게 퇴고했다. 이튿날 아침 공양 때도 전날 저녁과 똑같이 두 여인에게 아침 인사를 받았다. 내 공양이 끝나자 또 다른 여인은 내 공양 그릇을 잽싸게 낚아채 갔다.
그날 오후 느지막이 월정사를 떠나왔다. 이번 산사 가는 길은 다른 어느 때보다 기분이 좋았고, 산사에서 묵는 동안 글 마무리도 잘 됐다.
나는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한 진리를 깨우쳤다. 남에게 대접을 받거나 남을 감동시키는 일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조금 더 남에게 베풀거나 내 몫을 남보다 조금 더 적게 가지는 데 있다는 것을 새삼 체득했다.
진리는 멀고 고상한데 있지 않았다.
내가 남보다 조금 더 적게 갖고, 내 몫이 적으면 세상사람들은 서로 죽기살기로 싸우지 않을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세상에 내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가장 소중한 내 몸뚱이마저도 끝내 한 줌 흙으로 돌아가지 않는가.
내가 일상 생활에서 남에게 조금 더 베풀고, 남보다 조금 더 적게 가지면 세상은 한결 조용하고 밝아질 것이다. 그러면 세상의 평화는 저절로 깃들며 너와 나는 화목하게 될 것이다.
이즈음 세상이 날로 시끄러워지는 것은 내가 남보다 더 많이 가지려 하고, 내 몫을 크게 하려는 데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개도 물고가지 않는 돈 때문에 오늘도 저자거리는 소란스럽다.